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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 748 호 재개봉 영화 홍수 속, 극장이 나아갈 길은

  • 작성일 202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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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상

  최근 극장가에는 재개봉 영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 웨이브 등 다양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보편화로 관객들은 극장을 찾기보다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에 극장가는 과거 인기작들을 다시 상영하며 관객과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CGV의 ‘월간 재개봉 어바웃 필름’ 프로젝트, 롯데시네마의‘보석 발굴 프로젝트’ 등은 다양한 명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과거의 명작을 다시 스크린에 올리는 재개봉 방식은 변화하는 관객들의 취향에 맞춰 극장가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극장가에서 다시 만나는 영화들, 왼쪽부터 ‘스윙걸즈’,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사진: CGV 공식 홈페이지, 롯데시네마 공식 홈페이지)


재개봉 영화, 왜 늘어나는가


  재개봉 영화가 꾸준히 늘어나는 이유는 감성과 경제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재개봉 영화는 세대별로 다른 방식의 감정적 울림을 전한다.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한 경험이 되며, 중장년층에게는 과거의 감정과 경험을 되살리는 통로로 작용한다. 특정 시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품들은 시간이 흘러도 그 시절의 분위기와 감동을 되살리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이전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담긴 작품들은 세대를 초월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대표적으로, 2007년 개봉한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은 피아노 연주와 감성적인 연출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과거의 감정과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향수 효과’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원작과 국내 리메이크 작품 포스터 (사진: https://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5607820)


  한편, 경제적인 이유 역시 재개봉 영화가 늘어나는 데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이다. 팬데믹 이후 침체에 빠졌던 극장가는 여전히 회복 단계에 머무르고 있으며, 신작 제작비가 점차 상승하면서 흥행 가능성 또한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국내 극장 매출은 전년 대비 약 5.3% 감소했고, 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절반 이상 줄어든 상태이다.  


▲2023년 대비 2024년 극장 매출액 및 관객 수 비교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표 8>  202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이런 상황에서 극장과 배급사는 이미 검증된 작품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재개봉에 주목하고 있다. 기존 팬덤이 형성된 작품은 마케팅 비용이 적게 들고, 일정 수준 이상의 관객을 확보할 가능성도 높다. 더불어 제작비, 판권 구매비, 홍보 비용 등 다양한 지출을 줄일 수 있어 재개봉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선택지이다. 신작 대신 재개봉작을 선택하는 극장과 배급사의 움직임은 그만큼 위험 부담을 줄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추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기존 팬덤을 공략하는 영화관의 ‘선택적 재개봉’


  기존의 팬덤층이 두터우면서도 한국인들에게 남녀노소 사랑받고 있는 시리즈 중 대표적인 것은 ‘해리포터’와 ‘지브리 스튜디오’가 있다. 이 두 콘텐츠는 단순한 영화 자체를 넘어서, 하나의 세계관과 감정적 유대감을 통해 ‘기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재개봉 시기를 선택한다. 극장은 이러한 정서적 연결고리를 마케팅화 하여 전편 상영 이벤트나 순차 재개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이는 팬들에게 하나의 축제처럼 여겨진다. 대표적인 사례로 CGV는 2018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시작으로 ‘해리 포터’ 시리즈를 매년 4DX 포맷으로 재개봉하고 있다. 더불어 CGV는 작년 12월 25일부터 31일까지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 1부’ 재개봉을 기념해 영화를 관람한 후 매표소에서 티켓을 인증한 고객에게는 A3 사이즈 4DX 스페셜 포스터를 소진시까지 선착순으로 증정했다. 


  이러한 전략은 이미 검증된 콘텐츠이기에 신작보다 리스크가 낮고, 일명 ‘해덕(해리 포터 덕후)’라고 불리는 일정 소비층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극장 측은 한정판 포스터, 굿즈, GV와 같은 방식으로 팬들의 소장 욕구와 소속감을 자극한다. 결과적으로 극장은 단지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아닌, 팬덤 문화의 성지로 기능하게 된다. 


OTT와의 경쟁에서 극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


  OTT 플랫폼의 성장으로 관객들은 더 이상 극장을 필수적인 콘텐츠 소비의 공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고화질의 콘텐츠를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극장은 스크린 이상의 현장적인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 곳을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극장은 관객에게 ‘극장에서만 가능한 감각’을 제공하기 위해 기술적 리마스터링과 기념일을 활용한 마케팅을 전략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2024년 메가박스 왕가위 감독 재개봉 기획전 패키지 상품(사진 : https://x.com/cloudy_dune/status/1755401547784311042)


  2024년에는 1994년 탄생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의 30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대표작 ‘해피 투게더’와 ‘화양연화’은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국내 극장에 재개봉되었다. 왕가위 특유의 영상미인 수채화같은 필름, 슬로우 모션에서 나타나는 질감 등이 고해상도의 복원을 통해 한층 선명하게 살아났다. 이는 관객에게 또 다른 시각적 체험이며, 개봉 30주년을 기념해 바뀐 포스터 등은 팬들에게 기념행위의 일환이 된다. OTT가 제공하지 못하는 공간적 몰입과 공동체 감각은 극장만의 차별성을 부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재개봉 중심의 소비는 콘텐츠 순환 구조를 지연시키며, 새로운 창작자나 독립영화가 설 자리가 좁아진다. 이에 따라 관객층은 다시 기존 팬층으로 고착화되며 새로운 세대나 취향을 반영하지 못하는 소비구조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극장이 취해야 할 방향은 단순한 추억 소비가 아닌 그 감각을 토대로 지속 가능한 새로운 서사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재개봉은 하나의 생존 전략일 수 있지만, 새로운 관객층의 순환을 위해선 신작 발굴과 극장이 ‘영화를 보는 곳’ 이상의 문화적 관계가 연결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변의정 기자, 조윤정 수습 기자